아마 여러분도 균형이 맞지 않고, 원시적이며, 심지어 어설퍼 보이지만 마음을 울리고 솔직한, 마치 아이들의 그림을 닮은 작품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작품들의 작가는 모두 성인이며, 이들은 바로 나이브 아트(소박파 미술)를 대표하는 이들이다.
원래 나이브 아트란 실제 사물을 묘사하는 전통적인 지식이 부족하거나 이를 거부한 사람이 만든, 세상을 신선하고 순수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한 모든 형태의 시각 예술을 뜻했다. 하지만 이 정의는 대체로 20세기에나 들어맞는 이야기였는데, 21세기에 들어서는 나이브 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관들까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제 이 장르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개별 전문 미술관과 수많은 갤러리에서 소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조를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은 여전히 미술의 형식적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브 아티스트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하지 않는다:
• 거리에 따라 사물의 크기를 비례적으로 줄이는 것
• 거리에 따라 색을 흐리게 표현하는 것
• 거리에 따라 디테일의 정밀도를 낮추는 것
• 광원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
• 인간이나 동물의 정확한 해부학적 구조를 그리는 것
이른바 이런 '규칙'들을 제쳐두고, 나이브 아티스트들은 왜곡된 원근법과 거친 형태를 지니고, 구도와 상관없이 패턴과 강렬한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전경과 배경 모두에 극적인 강도를 담아 '기하학적으로 잘못된' 듯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초현실적인 성격을 지닌 그들만의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한다.
나이브 아트는 상당히 오래된 흐름이며, 그 시작 시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20세기 초, 다른 모든 예술 양식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예술 형식으로 처음 인정받았을 때를 그 기원으로 보는 것이다(다수의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던, 개념미술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나이브 아트를 영감의 원천으로 인정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수만 년 전, 최초의 동굴 벽화가 등장했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 그 시절에는 모든 예술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나이브 아트라 할 수 있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20세기 중반 무렵에는 대부분의 선진 지역마다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자국 나이브 아티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조의 핵심 인물 중 하나는 프랑스인 앙리 루소로, 그의 초상화와 정글 풍경, 이국적인 식물 묘사는 널리 사랑받고 있다.


사자의 식사(The Repast of the Lion), 앙리 루소, 1907년경 | 카니발의 저녁(A Carnival Evening), 앙리 루소, 1886년 (이미지 출처: commons.wikimedia.org)
루소는 40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세금 징수원 일을 그만둔 49세가 되어서야 예술에 완전히 전념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특히 초기에는 자주 조롱과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루소는 동화책과 파리의 식물원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먼저 풍경을 그린 뒤 전경에 사람이나 동물을 그려 넣는 '풍경-초상화'라는 새로운 화법을 창시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가 동료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1886년 파리에서 열린 앵데팡당전(Salon des Indépendants)에서의 첫 전시 이후였다. 당시 그의 작품 중 하나가 카미유 피사로(덴마크계 프랑스인 인상주의·신인상주의 화가)에게 루소를 조롱할 목적으로 보여졌지만, 정작 이 거장은 그의 화풍에 감탄하며 그 그림을 극찬했다. 그 작품이 바로 '카니발의 저녁'이었다.
또 다른, 이에 못지않게 유명한 독학 나이브 아티스트로는 조지아 출신의 니코 피로스마니가 있다. 그 역시 사망 후에야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20세기 초, 예술계에 첫발을 내딛던 시기에 피로스마니는 흰색이나 검은색 유포(油布) 위에 직접 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런 색을 칠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그는 단순히 유포를 칠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었다 – 이렇게 해서 그만의 기본 기법 중 하나가 만들어진 것이다. 피로스마니의 작품들은 그가 살던 시대와 지역의 사회적 조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다른 화가들과 달리 니코는 자연을 순수하게 모방하려 하지 않았고 세부 묘사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단색화이기도 하다.

베고스의 친구들(Begos' Friends), 니코 피로스마니, 1910년대 (이미지 출처: commons.wikimedia.org)
이 밖에도 루소와 동시대나 그 직후에 활동하던 많은 화가들이 저마다의 나이브 아트를 발전시켰으며, 이는 어느 정도 민속 예술에 힘입은 바가 컸다. 예를 들어 그랜마 모지스는 78세에 창작 활동을 시작해 미국적 사실주의에 대한 애정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반 게네랄리치는 정치적 함의를 담아 크로아티아 농촌의 고향 풍경을 그렸다 – 이들은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개인적 경험과 유산, 문화적 배경이 자신들의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도록 했다.


할로윈(Halloween), 그랜마 모지스, 1955년 | 붉은 황소(The Red Bull), 이반 게네랄리치, 1972년 (이미지 출처: wikiart.org)
나이브 아트의 핵심은 그 작가들이 규칙에 따라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재료와 구도, 아이디어에 대해 거리낌 없고 본능적인 태도로, 자신이 느끼는 대로 창작한다. 바로 이 점이 원시주의(primitivist) 화가들과 다른 부분이다: 숙련된 전문가인 원시주의 화가들은 의도적으로 단순화를 활용해, 자신들의 그림을 마치 서투른 것처럼 꾸며낸다. 마르크 샤갈, 파울 클레, 미하일 라리오노프,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가 이러한 작업 방식을 취했다.
'나이브(소박함)'는 '멍청함'이나 '편협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전문 미술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오늘날에는 전문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으로서 독학이 널리 퍼져 있는 만큼, 현대 예술가들에게서 완전한 순수함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나이브한 화풍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현존 작가로는 게리 번트, 라일 카르바할, 게이브 랭홀츠, 지지 밀스, 바바라 올슨, 페인 프로핏, 알랭 토마스 등이 있다.
한편 SketchAR 팀도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젊은 작가가 한 명 있다 – 바로 인도 출신의 소녀, 크리티카 S(Krithika S)다. 그녀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미술을 시작한 신인이다. 그저 재미 삼아 시작했다가 SketchAR 앱을 접하게 된 크리티카는, 이 앱으로 그린 그림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창작 활동은 단번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집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해서,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시간을 보낼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손으로 이것저것 흔한 것들을 그렸어요. 그러다 점점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흥미를 갖게 됐죠. 어떤 건 잘 그렸고, 어떤 건 정말 형편없었어요.
친구 생일을 깜짝 축하해주려고 친구를 스케치하려던 중에 SketchAR를 알게 됐어요. 처음엔 손으로 직접 그릴까 생각했지만, 시간도 없고 결과물이 어떨지 걱정도 됐거든요.
그래서 앱으로 완성한 저의 첫 작품은 친구의 초상화 느낌 그림이었어요. 그런데 SketchAR가 정말 좋고 재미있다는 걸 느꼈죠. 시간도 많이 절약해줬고, 결과물도 제가 기대했던 만큼 정말 멋지게 나왔어요.



제니퍼 애니스톤이 연기한 레이첼 그린 | 톰 엘리스가 연기한 루시퍼 모닝스타 | 휴 로리가 연기한 그레고리 하우스, 크리티카 S 작, 2020년
SketchAR의 사명은 예술적 기량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든 자신의 창의적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성취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특정한 원칙이나 규칙, 기준, 규범에 들어맞지 않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감정,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진실한 감정과 에너지의 파동을 지지한다.
나이브 아티스트들은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끈기와 굳건함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적어도 그들을 알아가 보자. 이 글을 통해 여러분 중 누군가는 미술관을 찾아가거나, 혹은 그저 온라인으로 작품들을 둘러보며 이 장르에 대해 더 알아보고, 나아가 누군가의 대담한 도전을 응원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게시글의 커버 이미지는 크리티카가 Sketchar로 만든 작품을 사용했습니다.

